| 새만금 간척사업은 총 1조8680억원을 투입, 전북 부안군 대정리에서 군산시 비응도에 이르는 세계 최장의
33㎞를 방조제로 연결, 여의도의 140배 규모인 4만100㏊(토지조성 2만8300㏊, 담수호 1만1800㏊)의 국토를 조성하는
계획.
현재 새만금 사업의 총괄기획과 매립면허는 농림부에서 맡고 있고 설계, 공사, 감리 등의 업무는 농어촌진흥공사에서, 지역개발과 보상업무는 전라북도에서 담당하고 있다. 한편, \`새만금\`은 오래전부터 곡창지대로 유명한 만경.김제평야와 같은 새로운 옥토라는 뜻이다. ■ 새만금 간척사업 진행 1970년대 서남해안 간척 장기구상에 뿌리를 두고 있는 새만금 간척사업은 전두환 정권시절 당시 농림부 장관이었던 황인성씨가 \`87년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개발하면서 출발하였다. 87년 3월부터 11월까지 7개월간의 짧은 기간에 사업 타당성조사가 이루어졌으며, 91년부터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하였다. 초기에는 국토확장 및 농경지 확보를 목적으로 하였으나 94년부터 지자체(전라북도)는 복합산업단지조성이라는 개발계획으로 사업에 혼란을 가져왔다. 이후 1999년엔 환경부가 복합산업단지조성계획을 백지화하고 간척지구를 친환경적으로 개발하며 농수산중심지화 할 것임을 밝혔다. 현재까지 새만금 간척지의 용도는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1996년 시화호 수질오염이 사회 문제화되자 환경단체들이 담수호로 조성될 새만금호 오염문제를 제기하고 나서면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환경단체는 이때부터 사업의 백지화를 요구하는 운동을 끈질기게 벌였다. 정부는 결국 99년 5월 간척사업을 중단하고 환경영향에 대해 1년여 동안 민관공동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정부와 학계, 시민단체 관계자 등 30명으로 구성된 민관공동조사단이 환경영향, 경제성 평가, 수질 등 3개 분과 위원회로 나뉘어 이 사업의 타당성 여부를 검토했으나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조사결과 발표를 연기했다. 2000년 8월 조사결과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했으나 정부는 쉽사리 사업재개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어왔다.
그러다가 2001년 5월 25일 정부는 이한동 국무총리가 주재로 관계부처 장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물관리정책조정위원회를 열어 새만금 간척사업을 환경친화적인 순차개발방식으로 재개하는 정부안을 최종 확정했다. \`순차개발방식\`이란 갯벌유실 등 환경문제를 최소화하면서 당초의 사업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환경문제가 덜한 동진강쪽부터 먼저 개발하고 만경강은 나중에 개발한다는 것. 정부는 중단된 방조제 공사를 재개해 총 33㎞의 방조제와 배수갑문 2개소를 2004년까지 모두 완공하고, 이후 동진지역의 담수호와 간척지사이에 99㎞의 방수제 공사를 2004년 시작해 2년동안 완공한 후 1만3200㏊에 달하는 동진지역 내부간척지 개발공사를 2008년까지 마무리하기로 했다. 그리고 만경지역 내부 간척사업은 수질대책 이행상황에 따라 추진하기로했다.
그러나 이에대해 새만금갯벌 생명평화연대가 시민.사회단체와 학계 종교계 노동계 문화.예술계 등 사회 각계의 인사 1천400여명이 서명한 새만금사업 중단촉구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는 등 반대여론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2003년 3월부터 5월31일까지 65일동안 문규현 신부, 수경 스님, 김경일 교무, 이희운 목사 등 종교지도자와 30여명으로 꾸려진 공식 수행단과 자발적인 지지자들이 새만금 간첩사업 중단을 요구하며 전북 부안의 해창갯벌에서 서울에 이르기까지 300여㎞의 \`삼보일배\`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2003년 6월엔 전라북도 주민들과 환경단체가 공사집행정지 가처분소송을 제기하였고, 2003년 7월 서울행정법원은 새만금
방조제 공사를 잠정 중단하라는 새만금 방조제 공사 집행정지 결정을 내려 공사가 중단되었다. 하지만 2004년 1월 이에 불복해
농림부가 제기한 항고심에서 서울고등법원은 1심 결정을 취소하고 농림부측 주장을 받아들여 집행정지 결정을 취소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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