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lobodan Milosevic 1941∼2006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는 신유고연방의 대통령이었던 인물로, 코소보에서 \`인종청소\`를 단행한 혐의로 유고전범재판소(ICTY)에서 재판을 받던 중 2006년 3월 헤이그 감옥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는 1941년 유고 동부 포자레바치에서 출생하였다. 전쟁 후유증을 앓고 있던 아버지는 그가 걸음마를 뗄 무렵 가출하여 그가 21세 되던 62년에 자살하였고, 엄격한 공산주의 교육을 강조하던 어머니도 72년 스스로 자살, 불행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가난하지만 공부를 잘 했던 그는 현재 부인인 공산당 지도자의 딸 미라 마르코비치를 중.고교 시절 만나 열성적인 후원을 받으면서 새로운 인생을 열어나가게 된다. 대학 졸업 후 변호사가 된 그는 잠시 금융계에서 일했지만 공산당에 투신, 장인 세력을 등에 업고 출세가도를 달렸다.
부인 미라 마르코비치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하여 1987년 개인적인 정력과 대중 웅변술로 티토가 만든 공산주의 동맹의 세르비아 지부장이 됐다. 1987년 세르비아공산당 당수로 선출되자 코소보.보이보디나의 자치주 지위를 박탈하는 강압조치로 인기를 얻었다. 1989년 세르비아 공화국 대통령으로 공식선출. 집권초기 밀로셰비치는 \`경영마인드를 갖춘 대통령\`으로 호평을 받았으나 점차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내세워 야당인사를 탄압하는 철권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슬로베니아 등이 분리독립을 해나가자 현지의 세르비아계 반군들을 지원,내전을 주도했다. 95년 보스니아 내전에 대해 서방이 경제제재 등 압력을 가해오자, 협상을 통해 데이턴 협정에 서명하고 세계평화를 위해 민족주의를 포기했다고 선언할 정도로 현실적인 면모도 있었다. 세르비아 공화국 헌법상 대통령 3선이 금지돼 있자 1997년 몬테네그로 공화국과 신유고연방을 결성, 연방 대통령에 올랐다. 그러나 1998년부터는 권력기반 유지를 위해 다시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자극, 코소보에서 \`인종청소\`를 단행해 170만명의 알바니아계 주민 중 85만명을 몰아냈다. 이 혐의로 1998년 6월 유엔 유고전범재판소로부터 전범으로 기소됐다. 2001년 6월로 임기가 만료될 예정이었으나 또다시 4년 더 대통령직을 유지하기위해 2000년 9월 조기 선거를 실시했다. 개표부정을 통해 재집권을 꾀했으나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2000년 10월 사임했다.
2001년 4월 세르비아공화국 경찰에 체포됐고 2003년 12월 현재까지 반인륜적 전범 혐의로 네덜란드 헤이그에 소재한 유엔 산하 구유고 국제전범재판소(ICTY)에 구금되어 있고 재판이 진행중이다. 밀로셰비치는 전직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으로 국제전범법정에 선 것이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변호하는 국제 위원회(ICDSM)\`라는 그의 변호인단은 영국의 좌익 극작가 해럴드 핀터와 미국 법무장관을 역임한 램지 클라크, 캐나다의 좌파 변호사 크리스토퍼 블랙 등 저명 인사들을 포함해 20여명으로 구성되었다. 변호인단은 밀로셰비치를 `발칸의 학살자\`가 아니라 세계화와""미 제국주의의 새로운 세계질서""와 투쟁한 인물이라고 주장하였다. 한편, 전범재판소에 구금되어 있는 상태에서도 2003년 12월에는 실시된 세르비아 의회 선거에 후보로 나서 당선되기도 했다. 그러나 2006년 3월 헤이그 감옥에서 숨진 채 발견됐으면 사인에 대한 공식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 비 고 화장기 없는 얼굴에 검은 옷을 자주 입어 \`레이디 맥베스\`라고 불리는 부인 마르코비치는 남편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정치공작에도 능해 \`응접실 공산주의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출처* 네이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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