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3년 간첩혐의로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받다 숨진 서울대 교수.
유신통치 제1년을 맞이하던 1973년 가을, 학생들의 반정부 시위가 거세지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생들도 체포·연행·구금되었으며, 당시 최종길 교수는 이 대학의 학생과장직을 맡고 있었다. 그는 교수회의에서 학생들을 옹호하면서 정권당국에 대한 교수진의 항의표시를 제안하였다. 학생들의 반정부시위를 진압할 구실을 찾던 정부는 소위 유럽거점간첩단 사건에 관한 수사협조를 빙자하여 최종길교수의 내방을 요청하였다. 최 교수는 73.10.16 유럽간첩단 수사협조를 위해 중앙정보부에 자진출두했다가 3일 뒤인 19일 새벽 중앙정보부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 때 중앙정보부는"간첩혐의를 자백한 뒤 양심의 가책을 느껴 7층에서 투신자살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74년"최 교수가 전기고문에 의한 심장파열로 숨졌다”고 발표했고 사망원인 규명을 요구했으나 제대로 된 조사없이 끝맺음 됐다. 지금까지 그의 의문사를 둘러싼 논란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유족들은 지난 1988년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으나 검찰은 \`공소시효(15년)가 지났다\`며 수사하지 않았다. 결국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가 최종길 교수의 의문사를 조사한 결과 2002년 5월 위법한 공권력의 개입으로 숨진 것으로 최종길 교수의 의문사를 인정하였다. 이후 유족들은 명예회복의 최종 단계로 국가 상대 손배소를 냈으며, 2004년 7월 1심 재판부는 국가의 책임을 인정, 10억원을 배상하는 화해권고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유족들은 “명예회복이나 소멸시효에 대한 판단 없이 배상액만 정하는 화해조치는 합의할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2005년 1월, 1심 재판부는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소멸 시효가 지났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후 최 교수의 유족은"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손배소 소멸시효는 개인의 불법행위와 달리 봐야 한다"며 항소했다. 그리고 2006년 1월, 항소심 재판부(서울고법)은 최종길 교수의 유족에게 국가가 15억5천만원을 배상하라는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유족은 법원의 강제조정 결정에 이의 신청을 내고 정식 재판을 요청했다. 그 결과, 2006년 2월 서울고법은 고(故) 최종길 교수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국가의 불법행위가 인정되므로 국가는 유족에게 18억4천80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네이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