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파공작원
북파공작원이란 한국전쟁중인 1952년부터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발표 때까지 북한지역에
파견되어 활동한 무장첩보원을 말한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면서 `공동성명
정신에 따라 서로간에 무장공작원을 파견하지 말자\`고 약속한 뒤 북파는 중단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북파공작원들은 최초 한국전쟁 당시 남한에 있는 지리산 빨치산처럼 북한의 후방을
교란시킬 목적으로 양성됐다. 적 생포 및 사살, 적군진지 주요시설물 폭파, 적지에서 각종
테러를 통한 사회혼란 야기, 첩보수집, 첩보망 구축 등을 주임무였다.
이들을 선발, 양성한 부대는 \`HID(Headquarters Intelligence Department)\` 로 불리는
\`육군첩보부대\`가 모체인 것으로 알려졌다. 48년께 만들어진 이 부대는 60년대말부터는
\`AIU(Army Intelligence Unit)\`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이 곳 말고도 `실미도\` 부대 등 북파공작원을 관리하는 특수 침투부대는 여러 곳 더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국군이 아닌 미군 정보부대에 소속돼 북파공작에 종사했던 요원들도
수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공작원 양성기능은 1968년 청와대 습격사건 직후 창설된 공군 특수부대를 거쳐 국군
정보사령부로 이어졌다.
북파공작원들은 원래 군인 신분이었으나 1953년 정전협정이 남과 북의 무력도발을 금지한
까닭에 군과 군의 공개적 전투행위는 불가능해짐에 따라 이후 민간인 신분으로 훈련받고
북파되었다.
■ 북파공작원 실체 공개
군 당국은 그동안 북한과의 관계를 우려해 북파공작원의 실체를 공식 인정하지 않았으나
1999년경부터 유족들이 이들의 명예회복과 보상을 요구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00년 10월 민주당 김성호 의원이일 북파공작원 양성·파견부대였던 HID(첩보
부대) 소속 북파공작원 가운데 53∼56년까지 활동했던 HID 1기∼3기 366명의 명단을 생존
공작원중 1명으로부터 입수해 공개함으로써, 북파공작원 실체가 처음 공개되었다.
1953년 휴전 이후 72년 남북 공동성명 때까지 북파된 공작원은 1만여명에 달하며 그중
사망.실종된인원은 모두 7726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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