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자료실

[보충자료]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
Date. 2005.10.12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 임진왜란 승전비. 1592년 임진왜란 당시 함경북도 길주지역에서 당시 의병장 정문부(鄭文孚·1565∼1624)가 이끌 었던 함경도지역 의병들의 왜군 격퇴를 기념하기 위해 100여년이 지난 후인 숙종 때(1707년) 함 북 길주군 임명 지역에 세웠던 승전비. 높이 187㎝, 폭 66㎝, 두께 13㎝. 함경도 의병이 가토[加藤淸正]가 거느린 왜군을 무찌른 것, 왜 란이 일어나자 반란을 일으켜 함경도로 피난한 두 왕자를 왜적에게 넘긴 국경인(鞠敬仁)을 처형 한 전말 등이 1,500자 비문에 소상히 적혀 있다. 임진왜란 당시 함북 길주지역의 전투는 정문부의 빼어난 전투 지휘 등에 힘입어 임진왜란 전사 에 길이 남을 만한 대승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1905년 러일전쟁 당시 함경도 지방에 진출한 일본군이 주민들을 협박해 이 비석을 파내 어 일본으로 강탈해갔다. 이후 북관대첩비가 야스쿠니신사에 방치되어 있다는 사실이 78년 재 일 사학자 최서면(崔書勉) 국제한국연구원장에 의해 확인됐다. 이후 북관대첩비 반환운동이 지속되었으며 2005년 10월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측은 최종적으로 반환 결정을 내렸다. 임진왜란 승전비. 1592년 임진왜란 당시 함경북도 길주지역에서 당시 의병장 정문부(鄭文孚·1565∼1624)가 이끌 었던 함경도지역 의병들의 왜군 격퇴를 기념하기 위해 100여년이 지난 후인 숙종 때(1707년) 함 북 길주군 임명 지역에 세웠던 승전비. 높이 187㎝, 폭 66㎝, 두께 13㎝. 함경도 의병이 가토[加藤淸正]가 거느린 왜군을 무찌른 것, 왜 란이 일어나자 반란을 일으켜 함경도로 피난한 두 왕자를 왜적에게 넘긴 국경인(鞠敬仁)을 처형 한 전말 등이 1,500자 비문에 소상히 적혀 있다. 임진왜란 당시 함북 길주지역의 전투는 정문부의 빼어난 전투 지휘 등에 힘입어 임진왜란 전사 에 길이 남을 만한 대승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1905년 러일전쟁 당시 함경도 지방에 진출한 일본군이 주민들을 협박해 이 비석을 파내 어 일본으로 강탈해갔다. 이후 북관대첩비가 야스쿠니신사에 방치되어 있다는 사실이 78년 재 일 사학자 최서면(崔書勉) 국제한국연구원장에 의해 확인됐다. 이후 북관대첩비 반환운동이 지속되었으며 2005년 10월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측은 최종적으로 반환 결정을 내렸다.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