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자료실

[보충자료] 국어 시 작품 - 국경의 밤 2부
Date. 2007.04.18
국경의 밤 제2부 28 멀구 광주리 이고 산기슭을 다니는 마을 처녀떼 속에, 순이라는 금년 열여섯 살 먹은 재가승(在家僧)의 따님이 있었다. 멀구알같이 까만 눈과 노루 눈썹 같은 빛나는 눈초리, 게다가 웃울 때마다 방싯 열리는 입술, 백두산 천지 속의 선녀같이 몹시도 어여뻤다. 마을 나무꾼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마음을 썼다. 될 수 있으면 장가까지라도! 하고 총각들은 산에 가서 \`콩쌀금\`하여서는 남몰래 색시를 갖다주었다. 노인들은 보리가 설 때 새알이 밭고랑에 있으면 고이고이 갖다주었다. 마을서는 귀여운 색시라고 누구나 칭찬하였다. 29 가을이 다 가는 어느 날 순이는 멀구 광주리 맥없이 내려놓으며 아버지더러, "아버지, 우리를 중놈이라고 해요, 중놈이란 무엇인데" "중? 중은 웬 중! 장삼입고 고깔 쓰고 목탁 두다리면서 나무아미타불 불러야 중이지, 너 안 보았디? 일전에 왔던 동냥벌이 중을" 그러나 어쩐지 그 말소리는 비었다. "그래도 남들이 중놈이라던데"하고, 아까 산에서 나뭇꾼들에게 몰리우던 일을 생각하였다. 노인은 분한 듯이 낫자루를 휙 집어 뿌리며, "중이면 어때? - 중은 사람이 아니라든? 다른 백성하고 혼사도 못하고 마음대로 옮겨 살지도 못하고" 하며, 입을 다물었다가 "잘들 한다. 어디 봐! 내 딸에야 손가락 하나 대게 하는가고" 하면서 말없이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낯에는 눈물이 두루루 어울리고, 순이도 그저 슬픈 것 같아서 함께 울었다, 얼마를. 30 재가승(在家僧)이란 - 그 유래는 함경도 윤관이 들어오기 전, 북관의 육진 벌을 유목(遊牧)하고 다니던 일족이었다. 갑옷 입고 풀투구 쓰고 돌로 깎은 도끼를 메고, 해 잘 드는 양지볕을 따라 노루와 사슴잡이하면서 동으로 서로 푸른 하늘 아래를 수초를 따라 아무데나 다녔다, 이리저리. 부인들은 해 뜨면 천막밖에 기어나와, 산 과일을 따 먹으며 노래를 부르다가 저녁이면 고기를 끓이며 술을 만들어, 사내와 같이 먹으며 입맞추며 놀며 지냈다. 그러다가 청산을 두고 구름만 가는 아침이면 산령에 올라 꽃도 따고, 풀도 꺾고 - 31 말은 한가히 풀을 뜯고 개는 꿩을 따르고, 하늘은 맑았고, 푸르고 이 속에서 날마다 날마다 이 일족이 잡아서 먹고서, 먹고서 잡아가지고 - 그래서 술을 먹고 계집질을 하고 아이를 낳고 싸움하고 영지를 빼앗고, 암살이 일어나고 - 추장, 무사, 처, 모, 아이,석부(石釜), 초의(草衣) - 이것이 서로 죽고, 빼앗고 없어지고 하는 대상 평화스럽고 살벌한 세대를 오래 보내었다. 32 새벽이면 추장이 "얘들아 일어나거라!"하는 소리에, 천막 속 한자리에서 잠자던 부부와 부모와 처자와 모든 것들이 이슬을 툭툭 털고 일어나서, 장정은 활을 메고 들에 나가고 처녀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몸을 쪼인다. 추장은 연해 싸움할 계획을 하고서 - 일족은 복잡한 것을 모르고 그날 그날을 보내었다. 33 그네들은 탐탐한 공기를 모르고 성가신 도덕과 예의를 모르고 아름다운 말씨와 표정을 몰랐었다 그저 아름다운 색시를 만나면 아내를 삼고 그래서 어여쁜 자녀를 내어 기르고 밤이면, 달이 떠 적막할 때, 모닥불 옆에서 고기를 구워서는 술안주하여 먹으며, 타령을 하면서 짧은 세상을 즐겁게 보내었다 몇백 년을 두고 똑같이. 34 그러나 일이 났다. 앞마을에 고구려 군사가 쳐들어왔다고 떠들 때, 천막에다 여러 곳에서 나많은 장정들이 모조리 석부를 차고 활을 메고 여러 대 누려 먹은 제 땅을 안 뺏기려, 싸움터로 나갔다. 나갈 때면 울며불며 매여달 리는 아내를 물리치면서 처음으로 대의를 위한 눈물을 흘려보면서. 남은 식구들은 떠난 날부터 냇가에 칠성단을 묻고 밤마다 빌었다, 하늘에 무사히 살아오라고! 싸움에 이기라고! 그러나 그 이듬해 가을엔 슬픈 기별이 왔었다, 싸움에 나갔던 군사는 모조리 패해서 모두는 죽고 더러는 강을 건너 오랑캐령으로 달아나고, - 사랑하던 여자와 말과 서부와, 석퉁소를 내 버리고서. 즉시 고구려 관원들이 왔었다 이 천막촌에 그래서 죽이리 살리리 공론하다가 종으로 쓰기로 하고 그대로 육진에 살게 하였다, 모두 머리를 깎이고 - 35 몇 백 년이 지났는지 모른다. 고구려 관원들도 갈리고 그 일족도 이리저리 흩어져 어떻게 두루 복잡하여질 때, 그네는 혹 둘도, 모여서 일정한 부락을 짓고 살았다. 머리를 깎고 동무를 표하느라고 남들은 집중이라 부르든 말든 - 재가승(在家僧)이란 그 여진의 유족. 그래서 백정들이 인간 예찬하듯이 이 일족은 세상을 그리워하며 원망하며 지냈다. 순이란 함경도의 변경에 뿌리운 재가승의 따님. 불쌍하게 피어난 운명의 꽃, 놀아도 집중과 시집가도 집중이라는 정칙받은 자! 그러나 누구나 이 중을 모른다, 집주이란 뜻을 그저 집중 집중 하고 욕하는 말로 나뭇꾼들이 써왔다. 36 마을 색시들은 해 지기까지 하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