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자료실

[보충자료] 역사속의 보건의료 - 68운동과 보건의료운동
Date. 2006.11.15
68운동과 보건의료운동 박한종(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 68운동의 철학과 보건의료운동 68운동은 현대사에 있어 독특할 뿐만 아니라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운동이라 할 것이다. 68운동은 운동의 규모와 격렬함에도 불구하고, 운동의 주체세력들은 정치적 권력을 장악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혁명의 폭발이 도무지 예상할 수 없는 속도로 번진 것처럼, 혁명 직후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의 급속한 쇠퇴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68운동은 70년대 들어서면서 기존의 사회구조 속에서 관심사로 등장하지 못했던 여성운동, 인종운동, 동성애운동 등을 폭발적으로 촉발시켰으며 또 일상생활과 세계관에 있어 급격한 변화를 몰고 왔다. 우리나라의 사회운동이 68운동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수용하기까지는 짧지 않은 시간의 격차가 있었다. 사회운동에서 68운동이 본격적으로 검토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에 들어서라 하겠다. 특히 우리에게 68운동의 영향은 68 이후 등장한 철학들, 포스트주의라 불리울 만한 각조 철학사조를 통해 걸러진 형태로 받아 들여졌다. 물론 68운동을 이런 틀을 통해서만 받아들일 이유나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흡수한 현실적인 68운동의 영향이 여기에 집중하여 있기에 이번 강좌는 이런 시각의 68운동을 중심으로 68이 보건의료(운동)에 어떤 영향을 주었으며, 보건의료(운동)의 발전을 위해 68운동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 것인가를 주로 다루려 한다. 68혁명의 개괄 68혁명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때아닌 운동이라 할 것이다. 68년을 전후한 서구의 상황은 그 어느 때 보다 평온하였다. 물론 이것이 세계적 차원에서 그러하다는 것은 아니다. 아시아-아프리카는 이제 막 제국주의적 침략에서 정치적 독립을 이룩하기 시작했고, 베트남에서는 제국주의와 민족해방운동간의 첨예하고 처절한 적대관계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구라파와 미국 등 선진국들을 본다면, 달러에 의한 세계체제 즉 팍스아메리카의 붕괴징후가 읽혀지지 시작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2차 대전 이후 최고의 호황이 계속되었던 오히려 호황의 정점에 있던 시기이다. 계속되는 호황으로 자본의 축적은 원활했고, 실업률은 최저의 수준이었다. 이에 따라 노동자(노동조합)들의 단결력도 어느 때 보다 높았으나 역으로 이런 토대가 오히려 노동자와 자본가 및 국가 간의 협약에 입각한 포드주의적 축적체계를 공고히 하였고, 소비에 있어서도 보편주의적 복지국가의 강화로 사회적 갈등을 약화시킬 수 있었다. 그러하기에 68혁명은 “때아닌” 운동이었던 것이다. 68운동은 프랑스, 독일, 이태리뿐만 아니라 체코슬로바키아 등 동구권, 미국, 멕시코와 중국, 일본을 관통하는 세계적 운동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프랑스의 예를 집중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1968년 3월 22일 다니엘 콩방디를 비롯한 8명의 학생이 낭테르 대학 학부장의 집무실을 점거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이는 미국의 베트남 공습에 항의하여 American Express Bank를 습격하다 체포된 학생 3명의 석방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기껏해야 2천명 정도의 소수파 집단이 조직한 이것이 이후 전 세계를 뒤흔든 운동의 시초였다. 점거 6일만에 경찰에 의해 캠퍼스는 봉쇄되었고 낭테르 대학 폐쇄에 반발한 학생들은 5월 3일 소르본에서 시위를 계속한다. 드디어 10일에는 시내 곳곳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대치하다 경찰과 유혈충돌이 일어난다. 11일 경찰은 철수하고 체포된 사람들이 석방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교육부로부터 자율성을 선언하고 대학들을 접수한다. 한편 2주정도 늦게 13일 총파업에 돌입한 노동자들이 시위에 적극 가담하고 공장을 점거한다. 연속적으로 총파업에 돌입해 천만명의 노동자가 파업하는 등 사회가 마비되는 상황에 이른다. 27일 퐁피두 수상은 최저임금 35%인상, 노동시간 단축, 더 많은 노동조합의 권리 등을 담은 \`그르넬 협약\`을 노동조합과 맺지만 오히려 노동자들은 이를 거부한다. 혁명은 이제 임박한 듯 했다. 그러나 29일 드골이 파리를 떠난 후 그 행적을 알 수 없게 되자 드골 지지시위가 잇따른다. 6월 5일 시위는 막을 내리고 드골 정권은 6월에 총선을 실시하여 승리를 거둔다. 프랑스에서의 68혁명은 진압된 것이다. 그러나 68운동은 프랑스 것만이 아니었다. 68운동은 70년대 초반까지 유럽과 미국, 라틴아메리카, 아시아를 뒤흔들었고, 학생들의 대학 점거와 노동자들의 총파업이 줄을 이었다. 1) 유럽 독일 : 68년 4월 학생운동가 두치게의 암살 미수로 30만이 시위, 이후 독일 보수언론 <스프링거 프레스>에 반대하는 운동이 대학을 점거하고 수십만이 파업을 하였다. 이태리 : 67년부터 시작된 학생들의 저항이 68년 거의 모든 대학을 점거하여 자주 관리체를 채택하였다. 체코슬로바키아 : 68년 두브체크의 등장이후 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