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자료실

[일반상식] 실학사상
Date. 2006.11.07
* 10급공무원 시험 - 일반상식 실학사상 조선 후기의 사회·경제적 변동에 따른 여러 가지 사회적 모순에 직면하여, 그 해결책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사회개혁사상으로서, 임진왜란 이후 싹이 트고 18세기를 전후하여 재야의 진보적 지식인들에 의해 연구되어 영·정조 때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들의 사상이나 개혁의 논리는 종래의 성리학 일변도의 학풍에서 벗어나 유학의 본령을 되살리기 위한 사상체계, 즉 선진유학(先秦儒學)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실학파의 철학사상은 기(氣) 일원론, 즉 유물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수광은 세계의 기원을 물직적인 기, 즉 태극으로 보았고, 아울러 그것이 세계만물을 창조한다고 하였다. 이것이 일원론적인 사상이다. 연구분야도 매우 광범위하여 현실개혁을 위한 사회·경제적인 문제, 천문학·수학·의학 등 자연과학, 역사·지리·언어·문학·풍습 등 인문과학, 그리고 새로운 철학체계 등 다양하였으며, 전반적으로 백과전서적 박학(博學)의 경향을 지니고 있었다. 초기에는 성리학적 토대 위에서 현실의 경제적· 사회적 제도적 문제해결에 관심을 가졌으며, 그 실학사상의 선구로서 유형원을 들 수 있다. 18세기 초 실학을 발전시킨 성호 이익은 성리학자이면서 서학의 과학기술문제와 사회제도 문제를 탐구하였던 실학자였는데, 그는 중국 중심주의 천하관을 극복하려 하였으며, 따라서 우리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중국에 대한 독자성을 강조하였다. 18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홍대용·박지원·박제가를 중심으로한 \`북학파\`가 등장한다. 이들은 상공업의 발달을 중시하였으며, 청나라의 발달한 상공업과 과학기술을 개혁의 모범으로 삼고자 하였다. 이후 실학파는 \`북학파(이용후생 利用厚生)\`와 \`성호학파(경세치용 經世致用)\`로 두가지 기본 유파를 형성하였다. 북학파는 18세기 후반에 그 활동을 종결하지만 청조로부터 적극적 문물의 섭취를 추구하는 입장은 19세기의 실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박지원의 제자인 김정희가 청조의 고증학을 도입함으로써 실학파의 새로운 학풍과 영역을 정립하였던 사실 속에 잘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