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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역사인식은 전쟁과 국가의 멸망을 부른다.
1. 수많은 출혈을 무릅쓴 수ㆍ당나라의 고구려 침략 이유 고구려와 수ㆍ당나라의 71년 전쟁의 시작을 고구려가 수나라를 먼저 공격하였고, 고구려와 수ㆍ당나라의 전쟁 원인을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다투는 전쟁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러한 역사교육은 SBS 드라마 “연개소문”에서도 고구려의 선제공격으로 수ㆍ당나라의 전쟁이 시작된 것으로 그려서 많은 국민들에게 전파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적 사실과 전혀 다르다. 수ㆍ당나라가 71년간 집요하게 고구려를 공격하고, 멸망시킨 원인은 전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기자조선 → 위만조선,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한(漢)나라가 설치한 현도군(현토군), 낙랑군 등의 한사군 땅위에 고구려가 건국되었으므로, 고구려 땅이 곧 중국 수ㆍ당나라가 수복해야할 중국 고토라는 왜곡된 역사인식이었다.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 군주나 수나라 뒤를 이어 중국을 통일한 당나라의 군주는 자신들이 통일해야할(수복해야 할) 또 다른 영토가 남아 있다는 중국 한인(漢人) 관리들과 학자들의 주장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통일 중국의 황제로서의 권위에 심각한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자신과 자신의 가문은 물론 자신의 나라 운명을 걸고, 수많은 피를 흘리는 고구려 정복전쟁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2. 잘못된 역사인식에 의한 수나라와 백제, 고구려의 멸망 그 결과 고구려에 패배한 수나라는 멸망의 길로 들어섰고, 당나라 또한 마찬가지였다.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는 영토를 되찾아야 한다는 중국인들의 잘못된 역사인식은 고구려 배후를 일소하기 위한 정복전쟁으로 나섰고, 결국 백제는 멸망당할 수밖에 없었다. 고구려 또한 71년의 길고긴 수ㆍ당나라의 침략전쟁 끝에 멸망당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고구려 영토가 중국의 영토가 아니라는 역사인식을 중국인들이 가지고 있었다면, 그렇게 많은 출혈을 무릅쓰고,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는 길고도 큰 전쟁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3. 왜곡된 한국사교육이 중국의 동북공정을 불렀고 한반도 침략을 부른다. 한반도 북부에 중국에서 온 위만조선,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한나라가 설치한 현도군, 낙랑군, 임둔군, 진번군 등의 한사군이 4세기 초까지 한반도 북부를 지배했었다는 한국의 역사교육은 필연적으로 중국의 동북공정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위만조선, 한사군이 오랫동안 지배해온 땅에서 고구려가 나왔으니, 고구려는 당연히 중국의 역사이고, 고구려의 후계왕조인 발해도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이고, 당연히 한강북쪽이 중국의 고유한 영토였다고 주장할 것이다. 발해의 후계왕조인 말갈족(여진족)의 금나라, 몽고족의 원나라 등이 한반도 북부 일부를 영토로 했었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고, 근세조선 후기 왕조가 만주족(여진족)의 청나라에 복속당한 것도 사실이다. 중국 한족(漢族)의 역사가 아닌, 중국 한족이 식민지배 당한 역사인 거란족의 요나라, 여진족의 금나라, 몽고족의 원나라, 만주족의 청나라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왜곡하고 있다. 그러한 중국이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마저 중국사로 왜곡시키고 나면, 한반도 북부는 기자조선(혹은 위만조선)으로부터 한사군, 고구려, 발해, 요, 금, 원, 청에 이르는 2,000여년동안 중국의 영토였다고 주장할 것이다. 뒤이어 한반도 북부는 중국의 고유한 영토라는 영유권 주장 여론이 일어날 것이고, 이러한 여론을 등에 업은 중국의 지도자들은 한반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한반도를 침공해 올 것이다. 1950년 가난하고 헐벗은 고산지대 국가인 티베트까지도 강제 점령하여 항구적인 지배를 획책하는 중국이 그렇게 나오지 않을 리 없다. 이는 수ㆍ당나라가 7년간 고구려를 침공한 역사에서 보듯이 수많은 중국인과 한국인의 피를 흘리게 하고, 수많은 중국인들과 한국인들을 극심한 고통 속에 몰아넣을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한반도 침략을 막아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지키는 길은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은 한반도에 있지 않았고, 거란족의 요나라, 여진족의 금나라, 몽고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