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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상식] Editor column |안면(顔面)자본주의
Date. 2006.07.07
조지 부시 대통령 부자, 프랭크 칼루치 전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 현 국방장관,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조지 소로스, 알왈리드 사우디 왕자 그리고 박태준 전 한국 총리…. 이들을 한 자리에 모을 수 있는 회사는 어디일까. 바로 칼라일 그룹이다.
칼라일 그룹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모펀드 중 하나로 정치(정권)-전쟁(군)-돈(방위산업) 이라는 철의 삼각고리(iron triangle)의 한 가운데서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 우리에겐 한미은행에 투자해 6200억원을 벌어들인 회사로 잘 알려져 있다.

《칼라일 그룹의 빛과 그림자》라는 책을 쓴 탐사 저널리스트 댄 브리어디(Dan Briody)는 칼라일의 비즈니스 방식을‘안면(顔面) 자본주의(Access Capitalism)’로 규정한다. 전·현직 고위층을 내세워 각종 정책 결정 과정에 개입하고, 압력을 행사하며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맥이 칡뿌리처럼 얽히고 설키다 보니 칼라일에선 부시 가문과 빈 라덴 가문이 사업 파트너로까지 연결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안면 자본주의’는 비단 칼라일 만의 비즈니스 방식일까. 아니다. 그것은 지금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힘 중 하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관료들이 있다. 특히 재경부·국세청·금감원 등 이른바 돈 되는 부처의 퇴직관료가 ‘안면 자본주의’의 주역(?)이다.

일례로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이헌재 전 부총리는 공직에서 물러난 뒤 국내 최대 법률사무소인 김&장 고문으로 옮겨간다. 김&장은 칼라일의 법률 자문을 맡았던 곳이다. 이 전 부총리뿐 아니라 한때 한국의 자본시장을 좌지우지했던 인사들 중 상당수가 법률회사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고문 내지는 사외이사 명함을 갖고 다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자리를 만들어준 회사를 위해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는 것만은 확실하다.

대우건설 노동조합이 작성한 대우건설 인수를 위한 금호그룹의 정·관·재계 인맥 도표를 보면‘안면 자본주의’의 실상을 보는 것 같다. 여기엔 전·현직 관료, 정치인, 금융인 등 유력 인사들이 상당수 등장한다.

퇴직 관료들의 경륜과 안목은 필요하다. 인맥을 활용해 합법적으로 비즈니스를 돕는 행위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도 없다. 로비스트를 합법화 시켜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마당에 지나치게 깔끔 떠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다.

문제는 ‘안면 자본주의’가‘부패의 사슬’을 만들어 이곳 저곳에서 썩은 냄새를 풍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안면으로 들이대다 보니‘부패의 사슬’이 기하급수적으로 증식된다는 데 있다. 현재 재판을 앞두고 있는 변양호 보고펀드 대표와 연원영 전 자산관리공사 사장은 이런‘부패의 사슬’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론스타와 칼라일의 행보에 의혹의 시선이 쏠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댄 브리어디는 책 말미에 다음과 같이 썼다.

“워터게이트로부터 이란-콘트라, 르윈스키 게이트에 이르기까지, 대중과 언론은 정치가나 관료들이 현직에 있을 때만이라도 정직하고 공정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감시하는 일을 수행해왔다. 그러나‘대중의 감시와 균형’이라는 메커니즘은 공직을 떠나는 순간부터 작동을 멈춘다. 권력과 영향력은 공직을 떠나는 순간 축소되지만 그렇다고 아예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렇다. 권력과 영향력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대중과 언론의 견제와 감시는 필요하다. 그것이‘안면 자본주의’의 폐해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당사자들의 자각과 결심이다. 그 정도 권력을 누리고 재산을 모았으면 됐다. 남은 여생은 남을 위해, 사회를 위해, 정신 세계를 위해 살겠다는 발상의 전환을 해보자. 인생 황혼기에 쫓아갈 게 여전히 돈과 권력 밖에 없는가.

강 혁 편집장 kh@ermedi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