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자료실

[시사상식]이라크 전쟁
Date. 2006.03.21
2003년 3월, 미국과 영국 연합군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 제조를 이유로 이라크를 공격한 전쟁으로, 이 전쟁은 4월 미.영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

■ 전쟁 발발전 상황

1991년 걸프전 이후 전쟁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당시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유엔(UN)의 무기사찰을 거부하고 군비확장을 계속해왔다. 미국은 걸프전 이후 이라크를 불량국가,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으며 후세인을 \`제거대상 1호\`로 지적해왔다.

또한 미국은 2001년 9.11테러사건 이후 북한, 이라크, 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였으며, 2002년 8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유엔 연설에서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WMD) 폐기 등 요구하고 정권교체를 언급했다.

이후 이라크가 유엔의 무기사찰을 수용했으나 미국은 2003년 2월 유엔 안보리에 이라크 침공 승인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하였다. 결국 2003년 3월 20일 미국은 유엔 안보리의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등과 함께 이라크를 침공하였다.


■ 전쟁과정

미군은 2003년 3월 20일 새벽 5시34분께 이라크 주변 페르시아만과 홍해, 지중해에 배치된 군함 6척을 동원해 모두 40여기의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을 바그다드 동남부를 겨냥해 발사했다. 또 미 공군 F-117 전폭기 두 대도 정밀유도 폭탄 두 발을 바그다드 시내에 떨어뜨렸다.

이라크 공격 작전명은 \`이라크 자유작전(Operation Iraqi Freedom)\`이었다. 이는 이라크 국민들을 사담 후세인으로부터 해방시켜 자유를 되찾게 해준다는 취지를 담고있다.

특히 미국은 이라크 전쟁 중에서도 바그다드 등 주요 도시에 대한 대규모 공습 작전을 \`충격과 공포(Shock&Awe)\`로 명명했다.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는 압도적인 화력을 집중해 이라크군을 충격과 두려움에 휩싸이게 만들어 이라크군의 전쟁의지를 순식간에 무력화시킨다는 내용이다.

미국은 이라크전쟁에서 1991년 걸프전 때와 비교할 수 없는 가공할 위력의 첨단 무기들을 동원했는데, 토마호크(Tomahawk) 미사일 등 정밀성과 성능이 크게 개선된 순항미사일과 정밀유도폭탄, 특정시설과 장비만 무력화시키는 특수폭탄 등이 주력무기로 활용되었다. 또 \`전자폭탄(E폭탄, HPMs)\`, \`공중폭발 초대형폭탄(모압 MOAB)\`, 합동직격탄(JDAM) 등 신형무기들을 선보였다.


■ 반전여론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후 전쟁을 반대하는 시위가 세계 곳곳에서 이어졌으며, 세계 곳곳에서는 반전시위가 잇따라 열렸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목적이 대량살상무기가 아니라 이라크의 원유확보에 있다는 비난이 일었으며, 민간지역에 대한 오폭 등으로 인해 민간인 사상자가 늘어나면서 비난의 강도도 더욱 거세졌다.


■ 전쟁 종결과 전후 처리

한달여에 걸친 공격으로 후세인 정권이 붕괴하고 미국과 영국의 점령군이 이라크에 들어섰으며, 후세인은 체포되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정상회담을 열고 `이라크 전후 3단계 처리 방안`에 합의했다. 미국과 영국은 △군정 △과도정부 수립 △제헌의회 구성 등 3단계의 새 이라크 건설 방안을 마련했다.

이후 \`이라크 재건·인도지원처(ORHA)\`와 \`연합군 임시행정처(OPA)\`의 통치를 거쳐 2003년 7월에 미군정하에 전후 이라크의 실질적 집행권을 행사할 25인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2004년 7월엔 임시헌법의 제정과 함께 과도정부가 출범하였으며, 2005년 10월에 국민투표를 통하여 영구 헌법을 채택하였다.

그리고 2005년 12월엔 실질적인 이라크 주권정부 출범을 위한 총선이 실시되었으나 권력과 이권을 둘러싼 종파간 갈등으로 아직 새 정부는 구성되지 못한 상태이다.

한편 전쟁후 대량살상무기(WMD)가 발견되지 않아 전쟁의 정당성이 흔들리는 가운데,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정보가 애초에 조작되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또한 이라크내 종파갈등과 저항세력의 공격 등으로 현재까지 미국의 이라크 재건 작업은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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